마지막으로 열어 제낀 박스를 내려다보다 바닥에 벌렁 누워버렸다. 어차피 자잘한 잡동사니를 쓸어넣어둔 박스이니 오늘 꼭 정리하지 않아도 될 거였다. 그리고 이대로 한동안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저 박스를 끝끝내 방치해둘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발 끝으로 죽 밀어놓고는 힘을 풀고 제대로 방바닥에 몸을 붙였다. 더 이상은 못해. 주말 이틀을 꼬박 이사에 쏟아붓고 나니 벌써 일요일 저녁이었다. 휴일을 누군가에게 도둑질 당한 기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 벽지가 눈에 들어온다. 저번 집 보다는 천장이 높은 게 유독 마음에 들었다.

 

여기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전에 살던 집 계약은 끝나가는데, 치솟는 전세금을 감당할 길이 없어 서울 외곽 쪽으로 새 집을 찾던 중이었다. 가게 근처에 좋은 매물이 나왔다며 부동산 업자도 아닌 게 신이 난 얼굴로 내 앞에 부동산 어플을 들이밀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전세금이며 방 조건 같은 게 아닌 동네 이름이었다. 기억 저편 속으로 밀어넣어뒀던. 봇물 터지듯 무수하게 뇌리로 쏟아지는 기억들을 가만히 떠올리다 문득 웃었던 것도 같았다.

 

그리고 꼭 10년 만이었다.

 

 

 

 

 

우리가 계절이라면 _ 2

w. HAZ

 

 

 

 

 

이사 하고나서 한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전보다 조금 더 멀어진 출근길에 복잡하게 꼬여있는 대중교통 노선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버스 정류장에다 뿌리는 시간과 길바닥에다 뿌리는 택시비를 저울질 하다가, 결국 기름값이 무서워 본가에 보내놨던 차를 되찾아왔다. 이래도 저래도 돈이 나갈바에는 몸이라도 편해야지. 차를 가져오고 나서 아침잠이 30분 축적된 것이 못내 행복했다.

 

10년만이었다. 열아홉, 소년 시절을 마무리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 후로 지나가는 길에 이 동네를 한번 지나가는 우연이라고는 10년동안 단 한번도 없었다. 학교로, 군대로, 다시 학교로, 회사로. 쳇바퀴 돌 듯이 도는 남들과 같은 루트에 이 동네를 끼워넣기에는 내 삶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지나온 날들보다 남은 날들에 더 열의를 불태웠던 만큼 이 곳은 자연스레 잊혀져 갔고, 가끔 그 남은 날들이 무료하고 재미없어 질 때 쯤엔 돌부리에 채여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드문히 기억이 나는 적도 있었다. 골목을 돌아 안쪽으로 자리한 자그마한 놀이터라던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땡볕의 운동장 한 가운데 라던가.

 

평일엔 출근, 주말엔 이삿짐 정리를 하느라 집 안에 먹을거 라곤 물과 대충 끼니를 때우던 몇 가지 편의점 음식 뿐이었다. 원래도 집에서 뭘 해먹는 것은 없었지만 최소한의 삶의 영위를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것들은 채워놔야 한다는 게 내 자취이론이었으므로, 아주 자연스레 이 동네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일은 장보기가 되었다. 정말로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근처에 있는 정한의 가게에서 늦은 점심을 얻어먹고, 정한에게 가까운 대형마트로 가는 길을 물었다. 차라리 저녁시간 끝내고 같이 가자 하는 그의 제안을 가볍게 흘려 듣고 가볍게 차키를 쥐었다. 동네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신혼부부, 내지는 동거녀와 함께 산다는 소문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이었으므로.

 

십 몇 년여만에 처음이라는 강추위가 휩쓸고 간 2월의 거리는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동네는 무서우리만치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남은 기억의 조각들 더듬어 처음 동네를 훑었을 때, 온전히 제 자리에 서있는 것이라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그리고 이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뿐이었다. 마른 나뭇잎 하나 걸려있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눈에 담으며 빨간 정지신호에 맞춰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는 내친김에 갓길에 차를 대고 시동을 껐다.

 

마른 플라타너스 잎이 버석거리는 이 길을 걸을 때가 있었다. 노란 잎도 생기를 잃어버리고, 온통 흐릿한 가을색으로 물든 길이었다. 기억속에서 그 아이는, 특별할 것 하나 없이 나와 같은 하얀 와이셔츠에 남색 조끼를 입고 이 길을 지났다. 선연히 기억나는 건 단지 조그마한 등에 매달려 있는 빨간 백팩이었다. 그 아이는 3년 내내 유난히 시린 빨간 가방을 메고 다녔었다. 가을색으로 잔뜩 채색된 이 길을 봄 같은 빨간 백팩을 맨 그 아이가 걸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걷는 내가 있었다.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기억 끝에 항상 꼬리처럼 물려있는 기억이었다. 왜 그 아이를 따라 걸었었을까. 왜 나란히 함께 걷지 않았을까. 그런 것들은 기억나지 않았다. 유난히 작은 등, 까만 뒷통수, 지금은 없는 빨간 백팩을 시야에 그리며 나는 그 길을 다시 따라 걸었다.

 

열아홉의 기억이 묻은 거리를 스물아홉의 내가 걷고 있었다.

 

 

 

***

 

 

 

늦은 주말 오후의 대형마트는 늘 그렇듯 복작하기 마련이었고,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장 보러, 군것질 하러, 마실 차 가족단위로 마트를 찾았다. 이 동네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마트는 동네 주민의 반 이상은 끌어다 모은 것처럼 사람이 많았다. 너댓살 되어보이는 조그마한 아이들이 빽빽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통에 혼이 다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나는 이렇게 정신 없을거라면 차라리 조금 비싸더라도 집 앞 편의점을 이용하겠노라고 다짐하며, 마트 한가운데서 로봇 놀이를 하는 아이들 그 사이를 아주 필사적으로 피해 걸었다. 계란만 집으면 이 지긋지긋한 마트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선식품 코너를 가리키는 푯말이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훑었지만, 바로 옆에서 들리는 새된 여자아이의 울음소리에 글자가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같은 자리를 세 바퀴나 돌고나서야 마트 직원에게 눈썹을 늘어뜨리고 이 지옥과도 같은 마트 지하 1층에서 날 구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거의 울 듯한 얼굴을 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직원은 아주 친절하게 나를 이끌어 쌓여있는 계란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

 

계란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고 생각했었다.

 

신선식품 코너 앞에는 나 말고 계란을 고르는 사람이 또 있었다. 6개 들입과 12개 들입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서 있던 그 아이는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올 법한 오렌지색 헤어를 하고 키가 작았다. 이제 한 중학생 쯤 되었을까. 방학이라고 욕심껏 멋낸 헤어가 좀 과한 것 같았다. 요즘 애들이란. 고심하다 하나씩 사진을 찍고 있는 걸 곁눈질로 보면서 꼰대 같은 생각 같은 걸 했던 것도 같았다. 그 아이가 내려놓은 12개 들입 짜리를 하나 손에 들었다. 옆에서는 결국 혼자서 고를 수 없었던지 아이가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듯 싶었다. 카트에 계란을 내려놓고 돌아서려 바퀴를 밀어내는 찰나에.

 

 

엄마, 사진 보낸 거 봤어? 계란 뭐 사가?”

 

 

기억 속 어딘가를 뒤 흔드는 목소리는 내가 아는 것이었다. 급하게 굴러가는 카트 손잡이를 잡아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렌지색 헤어를 한 키 작은 그 자는 여전히 핸드폰을 볼에 붙이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사지말라고? 그 사이 다시 한 번 들리는 목소리는 또 한 번 나를 그 자리에 붙박아 세워놓았다. 아이치고는 낮고 허스키한, 목 끝에서 울리는 바람 섞인 목소리. 아는 사람이라는 정보를 넣고 보니 조금 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면 키가 작을 뿐 성장기라기엔 골격이 크고 어깨가 넓었다. 적당한 두께의 야상 위로 올라온 목선은 얇지만 단단했고, 손가락은 길었다. 숙인 고개 끝에 달린 턱선은 성장기 아이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성인의 것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말아 꾹 쥐었다 놓았다.

 

가만히 서 있는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내 쪽으로 어깨를 틀었다. 그 순간의 동작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져서 조금 신음이 흘렀던 것 같기도 했다. 곧이어 밑을 수 없을 만큼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왜 이다지도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걸까. 그의 동작은 흡사 슬로우모션처럼 프레임 단위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 동공이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지는데, 마주한 상대는 너무나도 내가 알던 그 무심한 표정 그대로였다.

 

 

“ ...... 이지훈? ”

 

 

결국 나는 그 무심한 표정이 가진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

 

 

 

지금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학창시절 내 전공은 미술이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교육정책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일찌감치 아이들의 진로를 못박아버리는 학교로 유명했고, 그래서 입학과 동시에 아이들은 문과, 이과, 예체능 중에 자신의 인생을 선택해야 했다. 삶에서 고작 열일곱해 째를 맞았을 뿐인 아이들은 당연히 선택에 고심함이 없었다. 문학이 싫으니까 이과, 수학은 좆같으니까 문과, 따위를 적어내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조금 더 확고한 인생의 목표를 가진 아이들이 모인 곳이 예체능 반이었고, 그런 아이들은 그렇게 수가 많지 않았다. 입학하면서 한 반에 모인 아이들은 중도에 자신의 꿈을 뒤바꾸지 않는 한은 졸업까지 쭉 함께 지냈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 꿈이 한데 얽힌 예체능 반 안에, 너와 내가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나는 그림에 그다지 재능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림은 순전히 우리 엄마의 욕심이었다. 엄마에게는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게 꿈이었으나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엄마는 엄마가 가진 그 능력이 나에게도 물려졌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 걸로는 절대로 먹고 살 수 없다고 아버지가 그렇게 극구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엄마의 꿈이 나에게 투영되길 바랐다. 엄마는 잘못 알고 있었다.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형이었다. 그걸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도, 나도, 심지어 형 본인 조차도. 형은 그림 말고도 가지고 있는 게 많아서, 그런 재능 같은 건 눈에 잘 띄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나는 엄마의 기대에 눈이 가려져 헛되게 자랐다. 꿈을 깨는 데는 아주 오래 걸렸다.

 

그런 내가 봐도 이지훈은 어딘가 많이 달랐다. 반에 그림 깨나 그린다는 열 서너명의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지훈의 그림은 마치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독보적이었다. 4B연필이나 샤프, 모나미 볼펜 같은 걸로 쓱쓱 그려내는 낙서들에도 그녀석의 느낌이 묻어났다. 까만 선들이 이어지는 궤적을 보면서 막연하게 저런 사람이 미술을 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옆에 앉은 녀석과 속삭인 적이 있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쟤 만큼은 못 할거야. 그때 옆에 앉은 녀석은 후에 나보다도 빠르게 미술을 포기하고 문과반으로 발을 돌렸었다. 그런 아이였다, 이지훈은.

 

같은 목표를 가진 것 만큼이나 공감대 형성에 좋은 게 없었고, 반에서는 아주 당연히 같은 전공을 가진 아이들끼리 무리가 만들어졌다. 예체능 반에 미술 하는 애들은 운동하는 애들보다도, 음악하는 애들보다도 시끄러웠다. 최승철이 차라리 운동부 학생이었으면 이해라도 했을거라고 말하는 담임 앞에서도 목청 높여 웃는 게 나였다. 장난과 농담과 친구를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레 미술전공 아이들의 주축이 되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나와 다른 애들과는 달리 이지훈은 항상 무리에서 두어발치 떨어져 있는 아이였다. 태생이 말이 없고 조용했다. 점심시간 아이스크림 내기로 운동부 애들과 편먹고 축구를 할 때도, 스탠드에 앉아서 먼지가 수북히 날리는 운동장을 내려다 보는 아이였다. 그렇다고 운동을 못하거나 몸이 약한가 하면 체육시간에 운동은 꽤 잘하는 축에 속했다. 턱걸이 시험을 보겠다고 철봉에 통, 튀어오르는 까만 뒷통수가 제법 강단 있었다.

 

우리는 묘하게 같은 전공이라는 교집합 안에 있으면서도 섞일 듯 섞이지 않는 사이였다. 이지훈과 함께 한 기억보다, 이지훈을 바라보고 있던 기억이 더 많았다. 시선 끝 너는 항상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1년이면 드로잉북이 몇 번이나 바뀐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게 고등학교 3년 내내 너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었다.

 

 

 

***

 

 

 

너는 어떻게 10년이 지나도 변한 게 없냐. ”

어어... ”

 

 

어색하게 웃는 내 말에도 이지훈은 답이 없었다. 차 안엔 다시 숨이 막힐 듯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돌았다.

 

신선식품 코너 앞에서 이지훈의 이름을 불렀을 때, 이지훈은 외투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고 서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살아온 스물 아홉 해를 그 짧은 순간 안에 되짚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뚫어질 것 같은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다시 한 번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말아쥐었다. 나를 기억 못하는 건가. 기억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10년이나 지났는데 기억날 리가 없겠다는 체념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오갔다. 이지훈의 한쪽 눈이 약간 지푸려졌다.

 

 

‘... 최승철? ’

 

 

어린 아이들의 징징거리는 듯한 웃음소리를 한참이나 견디고 나서야 나는 이지훈에게서 내 이름을 들을 수 있다. 아무 표정도 담겨있지 않았던 이지훈의 얼굴에 빠르게 놀라움이 번져나갔다. 그 미세한 변화에 속으로 안도하며 손을 뻗었다. 안녕, 오랜만이다. 맞잡은 손에선 약간의 냉기가 흘렀다.

 

왜 내가 알아보지 못했는지 의아할 만큼, 이지훈은 놀랍도록 10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올 것 같은 밝은 헤어와, 옆으로 조금 더 넓어진 골격 뿐이었다. 얼굴은 젖살이 조금 빠졌을 뿐 학교에서 마주했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1cm도 더 크지 않은 듯 작은 키도 여전했다. 녀석은 마치 10년 전 이지훈에 머리와 옷만 갈아입힌 것 같아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지훈은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졸업과 동시에 내가 동네를 떠나고, 근처에 살던 아이들도 하나 둘씩 서울 중심부에 가까운 곳으로 떠나버려도 이지훈은 이 곳에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지훈은 같은 곳에 있었다. 학교와 가로수길, 거기에 이지훈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변함없음이 너무나 좋았다. 혹시 이지훈에게만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게 아닐까. 나는 뻘한 생각을 하면서 핸들을 고쳐 쥐었다.

 

반가움은 잠시 뿐이었고, 우리 사이에는 두어발치 간격만큼 어색함이 흘렀다. 이지훈도 나도 신선식품 코너가 마지막 코스여서 자연스럽게 계산대 앞으로 향했다. 1인 가구 분량의 식자재를 들고 선 나와 달리, 이지훈은 누가 봐도 혼자 들기 버거운 짐덩어리들을 양손에 가득 쥐고 버스를 타겠다고 했다. 차 없어? 했더니 세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뭐, 하는 방향 없는 답이 돌아왔다. 이 많은 걸 들고 버스를 타겠다고. 이지훈의 발치를 둘러싼 짐덩어리들을 내려다보다가 차키를 꺼내 들었다.

 

 

나 차 있어. 데려다 줄게, 타고 가. ’

 

 

이지훈은 조금 고민하는 듯 하더니 그래도 될까, 하면서 난처하게 웃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양손 가득히 짐을 들고 버스를 타자니 암담한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이지훈의 짐덩어리들 중 하나를 들어올렸다. 사실 짐은 핑계였을 뿐, 10년 만에 만난 녀석과 조금 더 오래 마주할 시간이 필요했다. 뒷자석에 짐을 실어놓고 시동을 걸었다.

 

 

승철아. ”

 

 

잠시 딴 생각을 하며 빨간 신호등을 노려보고 있는데, 옆에서 이지훈이 나를 불러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지훈은 안전벨트를 하고도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 파란불이다. 나를 불러놓고는 짐짓 모른 척 출발하라고 고갯짓을 하길래, 다시 앞을 바라보며 엑셀을 조금 세게 밟았다. 이지훈의 몸이 약간 앞으로 기울어졌다.

 

 

너는 무슨 일 해? ”

? 나 뭐 그냥... 일반 회사 다녀. 영업직. ”

... 그림 그만 뒀어? 언제? ”

제대 하고 나서. ”

 

 

꿈을 깨는 데는 아주 오래 걸렸다. 내가 본래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완전하게 깨닫는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대학엔 이지훈 같은 애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 속에서 나는 아주 보잘 것 없을 뿐이었다. 나의 대학생활은 내내 자존심과 정체성의 방황이었다. 나는 점점 더 작아져 가다가, 도망치듯 입대했다. 제대하고 나서 또 다시 도망치듯 자퇴서를 내려는 나를 눈물로 말리는 것은 엄마였다. 예술은 손에 쥔 게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윽박지르듯 엄마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지만 나는 끝내 엄마를 이기지 못하고 꾸역꾸역 미대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같은 공감대였던 꿈을 포기했다는 내 대답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는지, 이지훈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너는? 전공 살렸어? ”

.. .. ”

맞아, 너 그림 잘 그렸었는데. ”

여기 횡단보도 지나서 우회전. ”

난 재능 없더라. 그만두고 그냥 회사 다녀. ”

 

 

묘하게 엇갈리는 대화 사이로 이지훈은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지훈이 알려준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며 오른쪽 시야의 건물을 쭉 훑었다. 여기는 학교 다닐 때도 와본 적 없는 길이었다. 낯선 거리에 부는 스산한 바람이 차창을 훑는 소리가 들린다. 차의 움직임에 따라 살랑거리는 오렌지빛 머리카락을 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 하는데? 그러자 한참 만에 돌아온 대답은 대단히 의외의 것이었다.

 

 

실내건축 디자인. ”

? ”

인테리어 한다고. ”

 

 

나 그래도 요즘 좀 뜨고 있는데. 속삭이듯 덧붙이는 말은 뭐랄까 투정에 가까웠다.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도 점멸하듯 떠오르는 이지훈은 막연히 계속 그림을 그릴 거라고 생각했다. 조그마한 체구를 하고 하얀 캔버스 위를 지나다니는 이지훈의 손이 그 마저도 한폭의 그림인 듯 퍽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미술하던 아이들 중에서 끝까지 그림을 놓지 않을 사람이 있다면 그게 이지훈일거라고, 다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런데 인테리어라고? 어디서 빠지면 그런 샛길로 가게 되는 건지 너무나도 동떨어진 직업에 머리에 물음표가 뜨는 것 같은 기분으로 미끄러지듯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저기 앞에 내려줘. 이지훈은 애매한 위치를 지정해주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고맙다. 덕분에 편하게 왔네. ”

집에 올려다 줄게. ”

됐어, 임마. ”

 

 

인상 쓰듯 미간을 찌푸리며 웃던 이지훈은 양손에 두 개씩 봉투를 들었다. 제법 묵직한지 이지훈의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낚아채듯 한쪽 손에 든 봉투들을 빼앗아 양손에 쥐고, 앞장 서라고 고갯짓을 하자 이지훈은 또 한번 난처하게 웃었다.

 

 

의외네, 그림 계속 그릴 줄 알았더니. ”

그림은 계속 그려. 학교 다닐 때 하던 그림이 아니어서 그렇지. ”

어디서 빠지면 그림이 인테리어가 되는 거야? ”

 

 

사방이 막힌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공명했다. 8층입니다. 무미건조한 안내음에 이지훈의 대답이 가로막혔다. 딱히 의미있는 대답은 아니었던 듯 이지훈의 입술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열려진 기계문 사이로 발을 내딛자, 낡은 건물의 이음새가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는 우리 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오래된 복도식 건물이었다. 낡고 헐어진 건물 외관이 나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성인 남자 둘이 나란히 걷기엔 폭이 좁아서, 나는 쫄래쫄래 이지훈의 뒤를 쫒아가는 형국이 됐다. 정갈한 뒷모습을 따라 걸었다. 다섯집 정도를 지나자 이지훈이 멈춰섰다. 이지훈의 집은 오른쪽 복도 제일 끝에 있었다. 문 앞에 와르르 봉투를 내려놓고 나자 이지훈이 뒤를 돌았다. 몇 번 곱씹듯 아랫입술을 윗입술로 짓이기기에, 나는 가만히 서서 앞으로 이지훈이 할 말을 기다렸다.

 

 

.. 들어오라고 하고 싶은데, 지금 식구들이 다 있어서... ”

, 난 또 뭐라고. ”

미안. ”

괜찮아, 나중에 밖에서 차나 한잔 하자. ”

 

 

이지훈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봉투손잡이 자국이 벌겋게 난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지르며 돌아섰다. 뒷모습을 따라왔던 길을 다시 나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몇 걸음이나 내딛었는데도 뒤에서는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켜보고 있는 걸까. 일부러 돌아보지 않고 몇 걸음 더 걷고 나니 그제서야 철컥거리는 쇠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왔어어. 길게 늘어진 말꼬리가 너무도 생소했다.

 

 

 

***

 

 

 

아직 동네의 지리가 익숙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올 때는 네비게이션에 집주소를 찍었다. 이지훈과 내 집의 거리는 차로 5. 걸어가면 20분이 넘게 걸릴 거리였다. 걷자니 너무 멀고 차를 타자니 너무 가까운 그런 거리. 문득 학교 다닐 때 이지훈과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우리라고 묶을 수는 없었던.

 

내 몫의 장을 풀어놓다가 갑자기 중요한 게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나중에 밖에서 차나 한잔 하자고까지 했으면서, 이지훈의 핸드폰 번호를 물어볼 생각을 못한 것이다. 급하게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이지훈의 번호를 수소문 해 봤지만 몇 명 안되는 그 아이들 중에서도 지금 이지훈과 살갑게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없었다. 저녁 내도록 집착적으로 SNS를 뒤졌지만 끝내 지금의 이지훈을 찾지 못해서, 나는 조금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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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쿱지 1년 쌍방향삽질 프로젝트 ~

쌍방향 짝사랑 좋아하는 변태 둘이 일을 냈고요.

상상하시는 것 그 이상으로 게으른 자들이라 연재 텀은 쓰는 우리도 장담 못한다는 게 함정..

1년 안에 꼭 연애는 시키도록 하겠슴니당 ㅠㅅ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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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수달 승철시점 하즈

홀수달 지훈시점 공장장

 

몰라도 되지만 알아두면 덜 헷갈리실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