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게 그 당시에는 현실감이 좀 없어서. 그럴 리가 없는데도 나는 이 상황이 꿈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마트 특유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소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살짝 넋이 나가 있어 내 표정도 꽤나 엉망이었을 것이 뻔했지만 그것보다도 최승철의 얼굴에서 그 짧은 시간 견뎌내고 있었을 어색함과 초초함 같은 것을 읽어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름을 기억해 내느라 생긴 텀이라 오해하는 것도 같았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내가 널 기억 못할 리가 없다는 걸 굳이 넌 알아야할 필요가 없었다. 안도한 표정으로 건네는 인사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손을 내미는 동작은 또 흐르듯이 자연스러웠고 맞잡은 손바닥은 살짝 땀이 배어나 있었다. 손을 거두고서는 머쓱한 표정으로 웃고 청바지에 손바닥을 문질러 닦아내던 최승철

 

10년만이었다.

 

 

 

 

우리가 계절이라면_3

w. 공장장

 

 

 

 

사계절을 부족하지 않게 지낸 것 같은데도 최승철을 떠올리자면 함께 따라오는 계절은 늘 여름이었다. 더운 것도 질색이었고 굳이 부러 땀을 내며 뛰어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던 나와 달리 쉬는 시간이든 점심시간이었든 누군가 공을 들고 나가자 외칠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최승철의 하복은 늘 앞단추가 모두 열려있었다. 한바탕 뛰고 들어오면 선풍기 앞에서 하복 셔츠 안에 받쳐 입은 흰 티셔츠 목 부분을 잡아 펄럭대며 더운 몸을 식히던 뒷모습이나 목덜미에 맺혀있던 땀방울 같은 것이나 선풍기 바람에 실려 옅게 맡아지던 땀 냄새 같은 것들. 턱을 괴고 그 뒷모습을 진득하게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면 타이밍 좋게 네가 뒤를 돌아보며 교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내 시선을 알아차리는 것 같아 그 때마다 마음이 덜컹거리기도 했던 그 여름날들

 

이 동네에 토박이로 지금까지 지내온 나와 달리 최승철을 졸업과 동시에 이 동네를 벗어났다. 그랬으니 우연이라도 우리가 만날 기회는 없을 것을 알아 나는 일지감지 그런 기대 같은 건 버렸다.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당시에 하기도 했었지. 보통은 그렇게 동네를 떠나고 나면 다시 돌아올 일이 별로 없기도 했고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아직 이 동네 토박이로 지내는 동창은 나 말고도 꽤 됐지만 마주치는 일이 드물었다. 거기다 우린 학과 특성상 3년을 한 반에서 지냈어도 접점이 별로 없어 거리를 둔 사이였으니 더 그랬다

 

그래서 그 날 최승철을 마주친 것은 사고 같은 느낌이었다. 침착한 것처럼 굴었지만 나는 사실 좀 정신이 없었다. 아마 승철이 던지는 몇 마디는 대답도 못하고 놓친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자꾸 대화는 매끄럽게 흘러가지 못하고 뚝뚝 끊어졌다. 내게 건네지는 말의 끄트머리를 자꾸 놓치고 할 말을 찾다가 또 타이밍을 놓치고 겨우내 고르고 고른 질문이라는 게 고작 지금 하는 일이 뭐냐 정도였다는 것도 한심했지만 접점이 없는 동창생 둘이 10년에 만나 나눌 수 있는 대화거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 역시도 좀 의외이긴 했다만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말했을 때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돌아보던 얼굴.  감탄이 터져 나올까 입 안쪽을 깨물었다. 10, 세월의 때가 좀 묻어나고 훨씬 선이 또렷하고 거칠어진 얼굴이  수려했다. 최승철의 말대로 변한 게 없는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근사하게 어른이 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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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예체능 반은 이미 본인의 진로를 확고히 하고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또 딴에 예술을 지향한다는 녀석들만 모여 있는 터라 다른 반에 비해 좀 예민한 구석이 없지 않았는데 우리 반은 그 중에도 좀 유별난 편에 속했다. 생각해보면 붓과 연필을 잡는 미대지망생의 비율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운동하는 애들이야 교실에 없을 때가 더 많았고 음악 한다는 애들은 지들끼리도 잘 뭉쳐 다니지 않고 독고다이로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는데 유독 미술 하는 녀석들이 별 거 없이도 곧잘 부딪히고 까탈을 부렸다. 생각만큼 연필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마다 붓이 따라오지 않을 때마다 괜히 서로에게 짜증을 부렸다. 여고생 못지않은 예민함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나도 속해 있었고

그럴 때마다 그 날이 선 분위기를 잘 녹여내던 건 최승철이었다. 사실 학기 초 자기소개 시간에 누가 봐도 체육하게 생긴 놈이 미술을 한다고 했을 때 반 전체가 경악을 했었고 그 덩치로 붓을 쥐고 연필을 쥐고 있는 모습이 퍽도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자꾸 봐버릇하니 제법 익숙해졌다 싶었을 쯤엔 최승철 없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싶을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본인이 그런 역할을 떠안고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본래가 자연스럽게 사람들 잘 다루는 성격인 것 같았다. 늘 상 에너지가 넘치는 그 애 주변은 시끄럽고 소란스러웠지만 단연코 우리 반 내에 누구도 최승철을 싫어하는 녀석은 없었다

1학기가 끝나갈 때 무렵까지도 나와는 다른 성격에 서글서글한 반 학우 그 정도였다. 친해지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내가 감당하긴 어려운 성격 같아 그냥 한 두 걸음 물러나서 보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던 그 거리감을 훅 좁히고 싶어졌던 그 어느 날은 여름의 초입이었다. 춘추복과 하복을 혼용으로 입던 시기였는데 더위를 유난히 타던 그 애는 우리 반에서 제일 먼저 하복셔츠를 입고 왔었다. 그러고도 연신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셔츠를 펄럭거렸고 난 그 때까지도 춘추복을 소매 끝까지 내려 입고 있었다. 턱을 괴고 보며 더우면 가만히 있으면 될 텐데 싶었지만 그 덥다는 칭얼거림엔 짜증보다는 이 계절을 반기는 듯 설렘이 묻어났다. 연신 웃던 그 신이 난 얼굴이 제법 귀여워 내  드로잉북에 남긴 것이 시작이었다 

본격적으로 날이 더워져 내 교복 또한 하복으로 바뀌었을 때 내 드로잉북에는 꽤 여러 장의 최승철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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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싶어졌던 건 아주 어처구니없는 시점에서였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올라탄 지하철은 몸 한 번 제대로 틀기 어려울 정도였고 그 틈 사이에서 또 간신히 코트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 올리다가 문득 최승철의 연락처를 묻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세상 제일가는 머저리가 된 기분으로 휴대폰을 손 안에 꾹 쥐고 한참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뻔하고 환승할 방향을 잘못 찾아들어가는 등 출근길이 내내 정신없이 엉망으로 엉켰다. 사무실에 도착하고서는 괜스레 진이 다 빠져 의자에 무너지듯 앉아 고개를 뒤로 기댔다. 한심해 죽겠다 이지훈. 이렇게 어설프게 구는 스스로가 얼마만인지 몰랐다. 최승철의 등장은 스물아홉을 다시 열아홉으로 회귀시킨다.

피시를 눌러 켜면서 천천히 생각을 굴려보아도 달리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부팅은 내가 다시 해야겠는데. 한숨이나 쉬면서 캐드프로그램이나 열었다. 마무리 못했던 도면이 화면을 메운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제대 후였다. 그림을 그리는 건 좋았지만 순수미술을 하기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한 가지도 아니고 아주 여러 가지로. 실력도 고만고만했고 그만한 열정도 없었고 뭐. 그래서 비슷하다싶은 디자인과로 왔는데  그건 그거대로 또 안 맞아 하다가 도망치듯 군대를 갔고 또 돌아와서는 싫어도 복학은 해야겠지 싶어서 학비를 핑계로 좀 헤맸다. 그러다가 도면공장에서 일하면 돈이 좀 된다는 얘길 듣고 캐드를 배우려고 무작정 학원을 다녔는데 지금의 직장상사..까지는 아니고 동료쯤 되는 사람을 만났다

이 바닥에서는 꽤나 감각 있고 센스 있는 작품으로 유명한 건축사 아버지 밑에서 자라 자연히 꿈을 키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드 프로그램을 만지는 건 무척 따분해해서 수업시간에 나타나지 않기도 하고 하던 중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그러다 종내에는 나까지 꼬여내 데리고 나가기 일쑤였다.  남자 둘이서 수업 땡땡이를 치고 나오면 하는 일이라고는 대부분 술을 마시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또 술을 마셨다거나 였지만.

그 때까지도 나는 제일 잘하는 것이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자괴감과 패배감, 진로의 대한 막막함, 취업에 대한 걱정 같은 것들로 늘 기분도 머리도 무거울 때여서 늘 마다않고 따라 나가 술을 마셨는데 본래가 말이 많지도 않고 말주변머리도 없어서 술잔이나 맞부딪혀주는 게 고작이어도 마주 앉은 사람은 개의치 않고 나와 술 마시기를 즐겼다. 다양한 주제를 지루하지 않는 화법으로 말할 줄 아는 권순영과의 몇 번의 술자리가 있고 나서는 적당히 취기에 올라 당시에 짐처럼 느껴지던 고민들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 때 나에게 보여준 것이 권순영의 아버지이자 지금 내 직장의 상사인 소장님의 포트폴리오였다. 권순영은 내가 널 구원했다고 얘기하고 나는 네가 나에게 약을 팔았다고 얘기하는 대목인데 아무튼 그 포트폴리오를 보다가 홀딱 반해 나도 이런 집들을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로를 틀었다.  소장님의 포트폴리오에 나온 작품 비슷한 집커녕 제대로 된 집다운 집을 직접 설계해볼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한참이나 뒤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일이 적성에 맞아 다행이었다. 꽤 보람도 있는 편이었고

 

"이과장아 일 안하니?"

 

소장님이 출장을 가셨다. 이렇게 자리를 비우시고 나면 권순영이는 꼭 지가 내 상사인 것처럼 굴고는 한다. 놀고 있다.

 

"권과장님 저 지금 감시하십니까?

"뭐 또 그런 건 아니고?"

"넌 일 안하십니까?"

"...야지?" 

 

그래요, 권과장님 저 설계도형 만들어야 되는데 입면도 언제 주십니까? 어쩐지 이를 악문 서슬 퍼런 목소리가 들리자 한껏 뒷짐을 쥐고 사무실을 돌아보듯 하던 권순영이 지레 찔리는 표정으로 냉큼 제 책상으로 돌아가 앉았다. 그걸 보더니 들으라는 듯 크게 한숨을 쉬며 주말 끼고서 라도 해서 월요일 아침까지는 주시겠다면서요? 하는 목소리에는 모니터 아래로 고개가 더 숨어들어갔고. 난 그걸 보면서 혀를 찼다. 누가 지금 누구보고 일 안한다고 했냐 

권순영만 입을 다물면 사무실을 조용한 편이다. 한참 마우스 달깍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이렇게 일하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 되었는데 왜 나는 집중이 안 되는 거야. 프로그램을 아래로 내리고 카카오톡 피시 버전을 열어 친구목록을 쭉 살폈다. 아직도 가끔 연락하는 동창들의 연락처를 보는데 이 중에도 최승철의 연락처를 알 만한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우연히 마트에서 마주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어디서부터 찾아야 되냐 진짜."

"뭘 찾으시는데요?"

"10년 만에 만난 고교동창 연락처"

"첫사랑이라도 찾으세요?"

 

모니터 너머를 보면 심드렁한 뒷모습, 괜히 지레 찔려서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는데 관심도 없는 듯 시큰둥한 목소리를 할 땐 언제고 의자가 빙글 180도를 돌아 날 마주한다. 진짜 과장님 첫사랑이 예요? 찾는 사람이?!

 

"아니야."

 

, 나 지금 표정관리 제대로 하고 있었나. 소장님도 소장님의 그 아드님도 무섭지 않은데 우리 사무실 막내는 좀 무섭다. 눈치가 어마무시하거든. 날 보는 눈이 의심스럽다는 듯 능글맞도록 가늘어지는데, 미뤘던 숙제를 하듯 작업에 열중하던 순영이 그랬다. 아가야, 이과장 남고 나왔다

 

"페이스북에서 찾아봐요. 출신 학교만 쳐도 금방 나올 텐데? 요즘 그거 안 하는 사람 없잖아요"

"거기 있네, 네 앞에."

 

페북 얘기 나와서 하는 얘긴데 너 왜 내 친구요청 안 받아 주냐? 아 제가 과장님이랑 페북 친구를 왜 해요. 너 혹시 거기다가 내 험담 하고 다니냐? . 네에? 네에?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어? 와 은혜도 모르는 자식. 구박해도 되니까 제발 일이나 제 때 주세요. 과장님이 며칠 미루시면 전 기한 맞추려고 밤 샌다고요.

저것들은 또 시작이야덕분에 대화의 초점이 내게서 권순영이로 넘어간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웹페이지를 열어 페이스북을 띄워놓았다. 사실 난 SNS의 재미 같은 거 모르는 사람이라 한 번도 이런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름이며 이메일 주소, 생년월일 등의 기본정보를 요구하는 회원가입 페이지를 찬찬히 보다가 헛웃음을 터졌다. 이런 걸로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한들 뭐라고 연락할건데. 그럴만한 말주변머리도 없으면서.

10년이나 지났는데 이렇게 가슴 떨릴 일이냐고 묻고 싶었다. 넌 왜 여전히 그렇게 멋질까, 네가 말한 대로 나는 그 시간이 다 가도록 변한 게 없어 너에 대한 마음조차도 그대로인걸까 하고 생각하면 좀 숨이 막혔다. 시간 속에 이 감정이 희미해졌다면 어떤 방법으로 연락을 하든 이렇게 어려워하지 않았을 텐데 난 네가 아직도. 

가면 한 겹쯤은 우습게 쓸 수 있는 스물아홉 이지훈은 어디로 가고 열아홉 짜리 이지훈만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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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페이스북 가입창을 띄워놓았지만 끝내 다음 페이지를 넘어가지 못했다. 어쩐지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저 이 다음만 넘어가면 될 뿐이고 이 페이지 너머에 최승철이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 솔직히 말하자면 자존심도 한 2%?

그렇게 모니터 한 구석에 늘 고민하는 열아홉의 이지훈이 있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할 때까지도 나는 결국 회원가입창의 다음을 보지 못하고 피시를 껐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엔 그런 내가 너무 한심한 것 같아 술이나 한 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이렇게 술 생각이 날 줄 알았으면 권순영이가 불금인데 좋은데 놀러가자고 꼬드길 때 그냥 못이기는 척 따라나설 걸 그랬다. 혼자 술 먹는 것보다 나을 텐데. 괜히 휴대폰을 화면을 켜서 연락처를 쭉 살펴보지만 딱히 불러내고 싶은 친구도 없고.

동네 골목 어귀쯤에 있는 실내포장마차로 들어설 때까지도 휴대폰을 몇 번은 들여다보았다. 지금이라도 권순영을 부를까 싶었지만 여기까지 오란다고 오란 놈은 또 아니어서 그만두고 혼자 간단히 마시고 들어가야지 생각하며 고개를 들다 잠시 멈칫 발이 멈췄다. , 음 그러니까 나 방금 뒷모습만 보고도 널 알아보는 나 때문에 잠시 소름 돋았어. 

졸업하던 그 날을 마지막으로 10년을 안 보고 지냈다. 아주 가끔 떠오르긴 했었지. 나는 그래도 네가 내 기억 속에 많이 흐려진 줄 알고 있었다. 이제 넌 교복을 입고 있는 그 최승철이 아닌데도 난 왜 널 이렇게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걸까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작고 빳빳한 종이 한 장이 잡혔다. 혹시 몰라서 며칠 전부터 지갑에 여분으로 넣고 다니던 명함을 한 장 빼내어 굳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바로 꺼낼 수 있게. 잊지 않도록.

이번에는 줄 수 있을까 이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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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쿱지 1년 쌍방향삽질 프로젝트 ~

 

이걸 쓰는데 한달이 더 넘게 걸리다니 잠자코 하즈님 앞에서 대구리 박기로 했다.

쌍방향 짝사랑은 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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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수달 승철시점 하즈

홀수달 지훈시점 공장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