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시간 내에 비슷한 우연이 또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너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이 작은 동네를 더 열심히 배회했다. 너를 만나기 위해 같은 시간대에 마트를 들렀고, 퇴근 길엔 너의 집 근처를 일부러 돌아서 왔다. 페이스북에서 네 이름을 찾기엔 너무 흔한 이름이어서, 몇 번씩 이름을 검색해 보다가도 절망에 빠져 앱을 닫아버렸던 적도 있었다. 나를 피해 도망다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날 이후 너의 머리카락 한올 끝 조차 볼 수 없었다. 요즘 좀 뜨고 있다던 너의 우스갯소리를 기억해 서점에 들렀다. 알 수 없는 내용의 인테리어 잡지 서너권을 지나, 작게 난 인터뷰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에서 너를 보았다. 너는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이렇게 만나기 어려울 줄 알았다면 그 때 잊지 말고 네 번호를 물어볼 걸.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개를 쳐들었다. 책상에 이마를 콕 처박고 그 날의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되새김질 하고 있으려니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옆자리 동기가 말을 건네온다.

 


“ 승철씨 무슨 일 있어요? ”
“ 아니요 그냥... ”

 


제가 너무 등신 같아서요.

 

 

 

 

 

우리가 계절이라면 _ 4월
w. HAZ

 

 

 

 

 

며칠 내내 어깨가 축 쳐져 다니는 걸 보다 못했는지 정한이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며 가게로 불렀다. 세상 남의 일에 관심 없을 것 같으면서도 이럴 때 보면 은근히 세심한 정한이었다. 내가 별로 밥 먹을 기분이 아니어서.. 하니까 등신새끼가 기분으로 밥 처먹는다고 크게 혼이 났다. 그러고도 정한은 조금 후에 자기가 요새 가게 알바들 데리고 새로 다닌다는 포장마차의 위치를 폰메신저로 보내왔다. 밥 먹을 기분 아니면 술이라도 처먹으라면서. 세심한 친구다. 

 

정한은 항상 약속시간에 2-30분 정도 늦는 시간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주인공은 제일 마지막에 나타나는 거야. 두 명 뿐인 만남에도 주인공 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정한의 취미를 잘 알아서, 나는 정한과 만날 때면 항상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서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그래도 아마 10여분 쯤은 정한을 기다리게 될 터였다.

 

정한이 보내 준 위치는 이지훈의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내가 이지훈을 찾아 일부러 돌아서 다니던 길 바로 옆 골목 입구. 하필 골라도 왜 이런 곳이지. 정한이 내가 하는 고민을 알고 일부러 고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간단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봄저녁 공기가 아직 쌀쌀할 때였다.

 

동네의 작은 담벼락 하나, 좁다란 길 하나에 이지훈의 기억들이 새겨져 있었다. 한번 둑이 터지자 이지훈에 대한 기억은 마치 한번도 마른 적 없었다는 듯이 끝도 없이 솟아나왔다. 지나간 10년 전에 이 길을 앞서 걸었던 이지훈에 대해 생각한다. 일찌감치 하복을 꺼내 입은 나와 달리 초여름까지도 춘추복을 입고 있었던 작은 몸, 새빨간 백팩, 손가락 사이에 못 다 지운 옅은 물감얼룩, 물기 어렸거나 말라서 버석했던 나뭇잎 냄새. 같은 길을 걷는 것은 내가 버스정류장에 도달할 때 까지였다. 이지훈은 계속해서 걸어나갔고,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반대방향으로 출발해야 했으므로. 앉아서 가고 싶다는 명목으로 일부러 한 정거장 더 걸어갔었다는 걸 아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포장마차는 골목 입구에 서 있는 형형한 빛을 내뿜는 가로등 아래 있었다. 오늘 같은 날 이지훈을 만나게 된다면 그와 윤정한 중에 누굴 선택해야 할까 하는 세상 가장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자리에 앉은 그때.

 


“ 최승철, ”

 


어깨를 두드려 오는 손이 있었다.

 


“ 여기서 다 보네. ”

 


네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기적처럼 네가 나타났다.

 


“ 너도 한잔 하러 왔어? ”


 

놀란 마음에 멍청하게 얼굴을 올려다 보고 있자 민망한지 너는 멋쩍게 웃었다. 아직 밤 공기가 차가워서 그런지 어색하게 귀를 만지는 네 손가락 끝이며 양 귓바퀴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요 앞에서 봤는데 뒷모습만 봐도 너인지 알아보겠더라. 너 이제 진짜 동네 주민인가봐. 이사 온 데가 여기 근처야? 너 같지 않게 여러 말을 늘어놓으며 여전히 어정쩡히 서 있는 너에게.

 


“ 앉을래? ”  
“ 어어... ”
“ 앉아, 지훈아. ”
“ .. 그래도 될까? ”

 


먼젓번 나눴던 대화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너는 또 말머리를 흐리고, 또 멋쩍게 나의 제안에 동의했다. 작게 의자가 돌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온 우주가 퍼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눈을 감고 싶었다.


 

“ 혼자 왔어? ”
“ 어.. 뭐... 그냥 퇴근하는 길에 한잔 할까 해서. 너는? 너도 혼자 왔어? ”


 

오늘 같은 날 이지훈을 만난다면, 이지훈과 윤정한 중에 누굴 선택해야 할까. 나는 고민한 것이 무색하도록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지훈의 손을 들었다. 일행이 있다 한다면 당장 일어날 기세를 갖춘 그의 얼굴을 보면서. 


 

“ 약속 있었는데, 좀 전에 취소 됐어. ”


 

아... 살짝 벌어진 입술 틈새로 가지런하게 돋아나있는 송곳니를 본다. 옛날에도 이지훈은 자신이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미간을 접고 송곳니를 드러냈었다. 멍한 표정을 하다가는 곧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이 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처럼. 하나씩 과거의 이지훈과 현재의 이지훈을 결부 시켜본다.

 

안주를 뭘 시킬지 한참 고민하길래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 너 좋아하는 거 고르라고 해줬다. 금세 이것저것 메뉴를 주문하는 게 내 식성을 고려하느라 그랬다는 것을 깨닫자 코 끝이 간지러웠다. 나 담배 좀. 정한과 통화도 할 겸 담배 한 개비를 들어올려 보이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깊게 들이마시는 숨, 내뱉는 연기 사이로 나는 이지훈을 좇았다. 그때까지 벗지 않고 있는 코트 주머니에 뭐가 들어있는지 이지훈은 연신 주머니 안에 넣은 손을 꼼지락 거렸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야 너 때문에 오늘 문 두시간이나 빨리 닫았다고! 핸드폰 너머로는 한층 높이 올라간 정한의 목소리가 윙윙 울려퍼진다. 내가 내뱉은 뿌연 담배연기 속 이지훈의 눈이 시선을 맞춰왔다. 반투명한 우주와도 같은 눈동자. 봄바람이 아직 찼다.

 

 

 

*****

 

 

 

이런 서울 변두리 동네에서도 정한의 레스토랑이 쏠쏠한 입소문을 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정한의 영업전략 때문이었다. 정한은 그것을 항상 자신의 사업센스라 지칭하고 나는 지독한 탐미주의자의 또라이 같은 집착이라고 명명하는데, 이 이름만 거창한 정한의 영업전략은 ‘자고로 서비스직 종사자는 얼굴이 반반해야 된다’ 라는 것이었다. 먹고 살만해지면 잘생기고 예쁜 것을 찾게 된다는 게 정한이 덧붙인 부가설명이었고, 그런 정한의 생각은 보통의 2-30대 여성고객들의 취향을 제대로 직격타 했다. 정한의 가게는 뭐든지 적당적당 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게에 블랙과 화이트로 모던함을 꾸며낸 것도 적당했다. 카운터를 보는 매니저를 제외하고는, 오픈키친에서 조리하는 직원들과 서빙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전부 ‘잘생긴 남자’ 들이라는 게 유일하게 적당하지 않았달까.

 

그러니까 이 봄 햇살 내리는 맑은 일요일 점심에, 정한의 레스토랑 테이블이 만석인 게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몰랐다. 가게는 저마다 하늘하늘한 원피스나, 갖가지 어지러운 무늬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테라스 한 켠, 홀로 커피 한잔에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내가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느껴질 만큼. 변두리 레스토랑을 이만큼 복작하게 키워낸 정한의 센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바생들도 풀타임으로 고생하는 날인지라 정한도 직접 키친 안으로 들어가고, 다소 소란스러운 가게에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는 건 나 혼자 뿐이었다. 담배라도 한 대 물고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염병하게도 이 가게에 흡연자를 고려한 자리는 없었고 결국 나는 홀로 테이블 위에 놓아 둔 명함과 대치한다.

 

너를 찾아 이 동네를 여러번 배회했다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지훈의 주머니에서 내밀어진 건 이 얇고 작은 명함 한 장 이었다. 하얀 바탕에 회사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이름 석 자가 새겨진 게 전부인 심플한 명함. 명함 마저도 참 이지훈스럽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털어버렸다. 내가 너를 만나지 않은 날이 자그마치 10년인데, 그 긴 공백을 무시하고 너를 너 스럽다고 정의해도 되는 걸까. 내내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지 끝이 약간 뭉그러진 명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곱게 지갑에 넣었다. 심플하고 감각적인 이지훈의 명함을 앞에 두고, 회사에서 정해준 투박한 디자인으로 다른 사원들과 함께 몽창 찍어낸 내 명함은 차마 전해줄 수가 없어서 회사에 두고 왔다는 말을 대신 했다. 이지훈은 별 대답 없이 자기 잔에 소주를 채워넣었었다.

 

그 날 우리가 마신 소주는 네 병이었다. 세 병은 내 것이고 한 병이 이지훈 것이라 가늠한다. 술 잘하네. 고작 네 잔 째를 입에 털어 넣고는 부쩍 흐려진 시선으로 웃는 이지훈의 볼이 발그스름하게 올라와 있었다. 10년이 지나 이제 고작 두 번 만난 동창생과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우리는 대화의 대부분을 우리의 안부 보다는 같은 반이었던 동창생들의 안부를 전하며 근근히 이어나갔다. 누구는 결혼 했고, 누구는 이민을 갔으며, 누구는 애를 셋이나 낳았다는 시덥잖은 이야기. 그나마도 이지훈과 내가 속해있던 그룹은 완전히 다른 부류 였던지라, 겹치는 인맥 하나 없는 우리의 이야기는 내내 기근이었다.

 

입안에서 맴도는 너에 대한 질문은 하나도 꺼내지 못한 채 나는 무언가 얇은 막이 하나 얹힌 기분으로 내내 너의 잔을 채워주었다. 잔을 집는 너의 손 끝이 또 동그랗고 발그스름해서, 그 손 끝을 안주 삼아 입 안에 술을 굴렸다. 너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질문 하나가 입 안에서 구르다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 최승철, 어디 아프냐? 왜 혼자 멍 때리고 있어? ”

 


명함과의 대치상태를 비집고 들어온 건 정한이었다. 테이블을 두어번 두드리더니 맞은편에 아무렇게나 의자를 빼고 앉는다. 불 앞에 내리 서 있더니 더운지 연신 셔츠 앞자락을 팔락거렸다.

 


“ 그렇게 하면 더 더워. ”
“ 그럼 남자답게 매장에 에어컨 좀 달아주세요. ”
“ 헛소리 하는 거 보니 아직 덜 더운가 보네. ”
“ 너야말로 왠 명함이랑 눈싸움질이야? ”

 


점심시간이 끝나가는지 아까보다 테이블이 많이 비었다. 내 몫의 아이스커피를 가져가 입 안으로 들이붓는 정한을 흘겨보다가 옆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던 알바생에게 커피 한 잔을 더 부탁했다. 너네 사장님 입으로 들어갈 거니까 계산서는 없어도 된다는 말과 함께.

 


“ 이 동네 여자손님들 꽉 잡고 있나봐. ”
“ 그렇게 스케일 작아서 어디 쓰나. 옆 동네 고객님들 까지지. ”

 


얼음을 가득 물고 으득거리는 정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매장 앞 길에는 봄이라고 한껏 꽃잎을 피우고 있는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올해는 벚꽃이 예년보다 늦게 핀다고 했던가. 전에 비해 늦게까지 바람에 찬 기운이 들었다. 실바람에 살랑이는 벚꽃잎을 보면서 붉게 물든 이지훈의 손 끝을 닮았다 생각한다.

 


“ 매출 두 배로 올려준다더니 요즘 매장엔 왜 안와? ”
“ 바빴어. ”

 


이지훈에게서 명함을 받아놓고도, 나는 선뜻 먼저 이지훈의 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뭐라 이지훈과 연결할 서두가 없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며칠동안이나 지갑에 넣어둔 명함을 꺼냈다 다시 넣었다 하는 동안 나는 등신의 정의를 최승철, 이라고 새로 내려야 하는 게 아닐까 계속 생각했다. 내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볼까 하다가도, 너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으면 좋을 것 같기도 했고, 먼저 연락이 온다면 내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바보 같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민은 저 무수한 꽃잎 같았고 망설임엔 끝이 없었다.

 


[ 뭐해? ]
[ 집이면 차 한잔 할래? ]


 

우스운 망설임의 벽을 깬 건 내가 아닌 이지훈이었다. 스스럼없이 닿아오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망설임의 근원이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지훈에게는 그저 10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것 뿐이었는데. 이 꼴사나운 망설임이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데에 안도하며 트레이닝복 상의를 걸쳐 입었다.

 

우리는 가끔 만났고,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는 내내 기근이었다. 이지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말이 없었다. 나는 영업부에서도 언변이 좋은 편이었으나 이상하게 이지훈과 만날 때는 몇 마디 못하고 입을 다물기 마련이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실 때도 있었고 술을 마실때도 있었다. 이지훈은 가끔, 차가운 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불그스름한 손 끝으로 따라 그리다가,

 


‘ 미안, 재미없지. ’


 

했다. 무엇을 미안해 하는지 잘 모르면서도 나는 괜찮다고 했다. 아무래도 다 괜찮았으니까. 그럴때면 으레 손바닥에 찬 땀을 바지춤에 문질러 닦기 바빴었다는 걸 이지훈은 알고 있을까.

 

된바람이 불어 벚꽃나무를 마구 흔들어 놓았다. 회오리같은 벚꽃바람이 인다. 이지훈의 손 끝들이 갈 길을 모르고 이리저리 흩날리다 바닥으로, 문 앞으로, 이지훈의 명함 위로 내려 앉았다. 

 

4월.
어디선가 꽃바람이 불어와 내 심장을 휘감아치는 계절.

 

 


*****

 

 

 

정한의 가게를 나와서 이지훈의 회사로 핸들을 꺾은 건 오늘 하루 일과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지훈은 내일 모레 있을 미팅 때문에 지금 회사에 있다고 했다.

 


“ 일요일에도 출근해? ”
- 돈 벌려면 어쩔 수 없어.


 

대답하는 이지훈이나 대답을 듣는 나나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 나 지금 너네 회사 가고 있어. ”
- ... 여기 오고 있다고?
“ 놀러가자. ”


 

오후 세시.
틀을 깨고 너에게 한 발 더 다가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