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8. 01:26

오늘은 수다를 떨고 싶은 기분이니까 존댓말을 씁니다

 

거의 1년만이네요. 2월에 글을 쓴 게 마지막이라니 너무나 놀랍다.. 저는 1년내내 아주 소처럼 일을 했고 올해가 2주가 남은 이 시점에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그나마 나아진 점이 있다면 주말에는 쉰다(...)는 사실이랄까요.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떄로 항상 2014년을 꼽았었는데 올해로 갱신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를 가장 열심히 산 것 같네요

 

결과부터 이야기 하자면 저는 올 초에 마음 주지 말자고 다짐했던 그 회사를 아직도 다니고 있습니다. 진짜 한 20일 정도만 지나면 입사한지 1년이 되어가요. 그 전 회사에서 뒤통수를 워낙 거하게 맞아서 왠만하면 같은 부류의 회사에 정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의심했던 바와 달리 꽤 괜찮은 사람들이었고 괜찮은 회사 분위기였습니다. 여전히 그들에게 100프로 마음을 열진 않지만 우리회사, 우리팀 소속 이라는 생각은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아마 (단언하긴 어렵지만) 이 회사를 나가게 되는 때가 제 직업을 그만두는 때가 아닐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올해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 돌이켜보면 언제 뭘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부터 저의 1년을 달별로 되짚어보겠습니다 ㅋㅋㅋㅋ 사실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일만 한 한해가 허망하게 기억되지 않을까 싶어서.. 

 

 

 

 

 

> 1<

 

새 해가 보름 지난 시점부터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입사라기 보다는 그때까지는 프로그램 계약을 했었어요. 일하는 동안 제일 해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제가 직업을 포기하자마자 제의가 들어와서.. 아쉬우니까 딱 이 프로그램만 하고 그만두자! 라는 생각으로 들어왔었거든요.

계약은 외주랑 했지만 일은 본사에 들어가서 해야했기 때문에 (본사 프로그램 팀 (외주 팀 ())) 이런 구조 였고 저는 두배로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넘나 고통이었답니다.. 채널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아무튼 업무도 프로세스도 인간관계도 모든 게 NEW! 에서 시작하는 상황이 제일 스트레스 였던 거 같네요(가물가물

 

 

 

> 2<

 

2월엔 이 대형프로그램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안자고 일 해본게 너무 오랜만이에요. 출연자가 100명이 넘어가는 프로그램을 처음 해봐서 모든게 새로웠습니다.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 생각한 프로그램이에요. 시간이 너무 없어.. 나는 잠을 안자고 끊임없이 일하는데도 하루에 할 수 있는 양을 소화를 다 못해서 패닉상태였습니다. 어느정도냐면 공장장님한테 살아있냐고 연락이 오는데 죽겠어요 네글자 써서 보낼 시간이 없음...  

 

 

 

> 3<

 

본격적인 좌절감을 맛보는 달입니다저는 그동안 제가  분야에서 근무능력치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근데 큰 착각이었나보더라고요일단 결과물을 시간 내에 만들지도 못했고  중간 결과물로 윗사람에게 아주 산산조각이 납니다중간에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뺏기고 아랫자리로 밀려나게 됐어요진짜 어마어마하게 자존심이 상했던 일이었고 그때의 트라우마가 올해 내내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때의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지만  트라우마는 아직 극복하지 못한  같습니다.

본사 1층에 과일 파는 프레시마켓에서 딸기를 파는데 그게 너무 맛있어서 ㅠㅠ 저렴한 가격이 아님에도 거의 매일 사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후로 다른데서 파는 딸기는 못 먹는 병에 걸려버리고 말았답니다..

 

 

 

> 4

 

3월의 일로 해고 직전에 있었다가 기사회생합니다. 그 일 이후로 내내 제 위치를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가 불행 중 다행으로 제가 잘하고 자신있어 하는 일이 저한테 떨어졌어요. 저한테 기대를 하고 시킨 건 아니었지만 저는 그게 마지막 기회임을 본능적으로 알았고 일주일 내내 이악물고 밤을 샜었습니다. 외주 팀 동료들이 진짜 독하게 한다 할 정도로... 다행히 결과가 잘 나와서 저는 조금이나마 신뢰를 회복했고 해고위기도 면했습니다. 뭔가 항상 제가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입장이었는데 회사에서 짤릴 위기가 되다보니 참 무섭더라구요. 제가 그거라도 안했음 진짜 중간에 쫓겨날 뻔 했던 게 지금도 살떨리네요. 그래서 그 작업물을 지금도 참 좋아합니다. 저의 피땀눈물.. 앞으로도 두고두고 볼거에요..

 

  

 

> 5<

 

일하는데 소소한 기쁨을 주는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제가 탱CAM 이후로 누군가가 내가 한 작업물을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오랜만이었어요. 인터뷰도 진짜 열심히 땄고 그 친구가 진짜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프리랜서 신분으로 있던 저에게 회사에서 정식으로 입사제의를 해주었습니다. 역시 4월에 이악물고 했던 그 작업물이 계기가 되었어요. 고심하다가 회사 사원들간의 분위기가 좋아서 입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또 저에게도 고양이식구가 생겼습니다. 자취하는 동생 집 근처에 어미한테 버려진 듯한 생후 2-3주 된 새끼가 음식물쓰레기통 사이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고양이를 너무 싫어하셔서 같이 살지는 못하고.. 동생 따라 집에 가끔 놀러옵니다. 그렇게 작은 새끼고양이 처음봐요 ㅠㅠ 애기애기 제가 쥐면 터질까봐 너무 무서웠네요 

 

 

 

> 6<

 

올해 상반기를 탈탈털어 바친 대형프로그램이 끝났습니다. 뭐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3월부터는 계속 패배감에 젖어서 일을 했던 거 같아요. 끝날때 쯤 되니까 나는 이쪽 일을 하면 안되는 사람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게 되더라고요. 바람도 쐬고 그럼 좀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못자고 못먹고 못쉬고  하는 상태가 반년간 계속 되다보니까 사람이 많이 피폐해지더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후회가 많이 남는 프로그램이었고 하지만 두 번 다시 하자고 하면 하지 않을 분야가 되었습니다

저는 위기가 오면 오키나와로 휴가를 가요. 오키나와는 심신안정에 정말 좋은 곳입니다이번엔 오키나와 중부의 힐튼호텔에 45일 다녀왔는데 오로지 조식과 수영장만 보고 갔어요. 일정 내내 밥먹고 자고 수영만 했습니다. 진짜 짱이고 인생에 위기는 더 이상 없었음 좋겠지만 힐튼호텔은 다음에 또 가고 싶네요. 혹시 오키나와 힐튼 호텔에 가신다면 선셋비치 근처에 지바고 커피를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뷰가 초대박인데 커피도 존맛이거든요... 전 그 카페 때문에라도 다시 갈 예정이에요.

 

 

 

> 7<

 

대형 프로그램을 끝낸 뒤 당분간 일은 안시킬거라더니 회사에서 저에게 줬던 휴가 중 3일을 다시 회수하고 곧바로 다음 프로그램에 투입시켰습니다. 보통 저런 대형프로그램 하나 끝나면 2-3개월은 아무것도 안하고 쉬거든요. 근데 휴가 겨우 2주 받고 다시 저를.. 새로운 프로그램에 강제 투입 시키다니.. 부들부들.. 게다가 그 대형프로그램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본사 스텝이 같은팀 직속선배가 되어버려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첫 출근 하던 날 같이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식겁해서 하루종일 이대로 퇴사해야 되는지를 고민했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달부터는 스트레스풀이용 화장품 사재끼기를 멈추고 쟁임서랍에 쟁여놓은 화장품을 다 쓰자! 모드가 되었습니다. 힛팬완팬공병 기록용 트위터계정도 만들었는데 구경하시려면 여기로 >> http://twitter.com/October___30 나름 리뷰도 꼼꼼하게 쓰고 있습니다

 

 

 

> 8<

 

유난히 야외헤서 하는 작업이 많았어서 불타는 땡볕에서 지옥의 스케쥴을 강행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총괄자 분은 너무나 솔선수범 하시는 분이라 잠을 거의 안주무시고 일을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못자면서 일할 프로그램이 아닌데; 잠을 못자는게 너무 괴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너무 덥고 졸리고 짜증이 났던 기억만 남아있네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직속선배가 되었다는 그 분과는 의외로 무탈하게 잘 지냈습니다제가 상반기동안 알아온 모습과 절반은 딴판인 부분에 사람을 단면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는구나 깨닫게 된 계기 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친해지진 않았지만 사람을 다시 보게 됐달까요.  

 

 

 

> 9<

 

바람이 점점 선선해지면서 1년내내 일만 했다는 사실에 우울감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이번 프로만 끝나면 올해 더이상 일은 안하겠지 라고 헛된 희망을 가져보았습니다.

일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회사에서 숙직하지 않고 출퇴근을 하기 시작합니다. 왕복 3시간이어도 집에서 다니는게 좋더라고요 저는.

 

 

 

> 10<

 

올해 두 번째 프로그램이 끝났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원해서 온 것도 아니었고 팀 분위기도 엉망진창이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끝나고 나서 보니 3월부터 내내 바닥을 치던 자존감을 그나마 조금 끌어올려준 프로였던 것 같아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업에도 나름 자신감이 조금 회복 됐고, 내가 그래도 아주 쓸데없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두 번째 휴가는 3주를 받았습니다. 꽤 길어서 여행도 두번 다녀왔어요.

우선 공장장님과 호텔놀이를 하러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을 갔습니다. 가서 한 거라고는 바다구경+호텔놀이+온천 밖에 없는데도 '내가 제대로 쉬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준 여행이었습니다. 혹시 노천탕을 좋아하시나요? 그렇다면 파라다이스호텔을 가십시오. 노천탕이 아주 개짱이랍니다... 부산은 뭐 아무것도 안해도 그냥 부산이라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이번엔 오로지 호텔온전놀이를 하러 갔던 거지만 다음엔 이것저것 알아보고 맛집투어 동네투어를 다녀볼까 합니다. oO(공장장님이 또 같이 가주시려나..?)

그 다음 주에는 외주회사 선배와 같이 오사카를 다녀왔습니다. 이 선배와는 두 번째 프로그램 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3개월 만에 급속으로 친해져서 어쩌다보니 여행도 같이 가게 되었어요. 일단 10월에 길게 날짜를 뺄 수 있는 지인들이 없으니 시간 되는 사람들이 서로밖에 없음ㅋㅋㅋ 공장장님이나 고등학교 친구들 등 만난지 아주 오래된 사람 아니면 같이 여행 간 적이 없었어서 친해진지 얼마 안된 사람과 같이 가도 되는걸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서로 성격이 까탈스럽지 않아서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다만 좋은거 싫은거 의사표현을 잘 안하시는 분이라 그 점이 좀 답답했네요. 저는 좋은 거 싫은 거 바로바로 말하는 편이라.. 

34일에 오사카2-교토1일 일정이었는데 저는 교토가 좀 더 취향이었습니다. 다음에는 교토만 더 긴 일정으로 가볼까 하구요. 맛집을 막 찾아다니진 않았지만 아무데나 찍어서 들어가면 다 오사카 맛집 상위랭크 인 집들이라 나름 뿌듯해 했습니다. 유니버셜스튜디오도 재미있었어요. 미국에서 왜 안갔는지 아쉬워 질 정도로놀이기구가 참 재밌더라고요여행은 느긋하게 최대한 한량처럼 다니는 스타일의 제가 역대 여행중에 가장 많이 돌아다닌 일정이었습니다. 매일 3만보씩 걸어다님..

 

 

 

> 11<

 

설마설마 했는데 여행에서 돌아오니 세 번째 프로그램에 투입시킵니다. 너무 빡쳤지만 회사에서 저의 위치는 중간 좀 아랫부분 이기 때문에 크게 항의는 못했습니다. 회사에서도 미안했는지 '좀 도와줘' 라는 개념이었는데 막상 투입되고보니 '도와줘'의 범위가 너무 커서 더 분노했습니다. 누가 일주일씩 밤을 새며 도와주나요 이미 저는 이 팀의 일원이었던 것.. 연봉협상날을 기다리며 이를 갑니다.

올해 너무 의자에만 앉아서 먹고 자고 일하고 하다보니 작년대비 몸무게가 5kg이나 늘었습니다. 전부터 하고 싶었던 필라테스를 계속 알아보다가 요가를(?) 등록했습니다. 다이어트도 다이어트지만 몸 여기저기가 너무 찌뿌둥하고 아파서 테라피의 개념으로 시작했습니다. 플라잉요가는 아직 도전하지 못하고 아쉬탕가요가/발레필라테스/테라피요가를 중점적으로 트레이닝을 받는데, 분명히 살이 빠질 것 같진 않지만 몸이 너무 개운해서 하고나면 행복합니다. 저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1년 이상 꾸준히 해보고 싶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 12<

 

'좀 도와줘' 가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주만 마무리하면 도와주는 일도 끝이거든요. 올해는 진짜 일만 하느라 공장장님이랑도 거의 못만났지 뭐에요. 공장장님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함께 1년을 마무리하는게 제 남은 2주의 목표입니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정말로 진짜 일만 했네요...  정말 일만 했구나.. ㅠㅠ 이렇게 일만 했으면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되는데 어째서 돈도 없어..ㅠ..

내년에는 일도 적당히 하고 놀기도 적당히 노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